I. 머리말
II. 유적검토
(1) 공주 하봉리유적
(2) 천안 화성리유적
(3) 청주 송절동유적
(4) 천안 청당동유적
(5) 서천 한성리유적
(6) 서천 오석리유적
III. 맺음말
요약
기원을 전후한 시기는 우리 한반도가 고대국가로서의 발돋움을 하는 때이다. 북부지방에서는 이미 고구려가 왕권국가로서의 기반을 갖추고 이웃한 중국의 제 집단과 쉴틈없는 쟁투를 벌이는 단계에 접어든 한편 남부지방에서는 아직 여명기이지만 백제나 신라 및 가야가 뿌리를 내리고 점차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져가고 있었다. 특히 충남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지역은 일찍부터 청동기와 초기철기시대를 거친 선진된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 선진 집단들은 당시의 반도 남부에 고구려와 대비되는 삼한의 마한에 속하면서 제 각기 조그만 소국체제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여 영위되었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전술한 여러 유적을 통해 볼 때 적절한 거리를 두고 단위문화권으로서 발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충청 서부지역 중 지금의 천안지역, 연기지역, 공주의 장기지역, 이인지역 및 서천지역, 청주지역, 보령지역, 서산지역, 대전지역 등은 이미 유적이 확인되어 원삼국시대 또는 마한의 한 소국들이 이들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음이 추정된다. 그리고 이들 유적간에는 지역적인 독특한 특성을 지녔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상호간에 연계성을 띤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같이 이 지역에 분포된 유적들은 보편성과 특수성이 함께 내재된 상황에 머무른 상태라 하겠다. 다만 이러한 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정작 공주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즉 공주의 주변인 이인이나 하봉리, 수촌리 등에서만 당해 시기의 유적이 확인될 뿐 백제가 중기의 도읍지로 선택하는 지금의 공주 시가지에서는 천도 이전의 유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아마도 백제의 왕도 선정이 기존의 세력권을 피한 채 세력 간의 공백지로 자리잡는 정치적 전술이 아닌가 여겨진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