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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신 소정방과 대흥(城隍神 蘇定方과 大興)

  • 분류 기타 >
  • 권호수 제30집
  • 저자 변동명
  • 발행일 2007년 6월
  • 게재지 역사학연구
  • 발행처 호남사학회

목차

I. 머리말
II. 蘇定方과 大興
III. 蘇定方祠(蘇都督祠)의 創建
IV. 大興 城隍祠와 城隍神 蘇定方
V. 맺음말

요약

대흥 성황신으로 추앙된 소정방은 백제를 침공했다가 당으로 귀환하기 직전 임존성[대흥]을 공격한 적이 있었다. 도한 그 전후 언젠가 대흥 大岑島를 거쳐갔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백제를 멸망시킨 唐將인 그가 대흥지역에서 신격화될 수 있었던 연고는 그와 같았다. 소정방을 祭享했다던 대흥의 두 사묘 중 먼저 세워진 것은 대잠도 소정방사였다. 소정방을 신격화함으로써 백제인으로서의 자의식이 남달랐던 지역민들을 억압하며 또한 체념토록 유도하려는 신라의 중앙귀족들에 의해서였다. 그 후 고려중엽을 넘어서는 무렵 대흥에서는 백제유민의식이 소멸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지역민의 소정방에 대한 적개심도 사라졌다. 그는 단지 관습에 따른 제향과 외경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었으며, 마침내 고을의 수호신이자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헌데 그 무렵 대흥 봉수산에는 마찬가지로 고을의 상징이자 수호신을 제향하는 사묘인 성황사가 건립되었다. 지방의 자그마한 고을에 유사한 성격의 두 사당이 공존했던 셈이거니와, 자연히 시간의 흐름과 함께 둘은 지역민들 사이에서 곧잘 혼동을 불러일으켰다. 고려말 조선초 즈음이면 서로 구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대잠도 소정방사와 봉수산 성황사 및 그 신격이 한데 뒤섞여 받아들여지는 지경이었다. 나아가 조선왕조 개창 이후 사묘가 일제히 정비되면서, 유사한 기능의 두 사당은 통폐합이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대잠도 소정방사가 폐지되어 봉수산 성황사로 통합된 결과, 조선전기 들어 성황사의 퇴락과 함께 소정방은 점차 지역민의 의식 속에서 지워져갔으며, 오늘날에는 그가 대흥의 성황신이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필자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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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김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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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제지역사학연구 제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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