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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한성시기 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수용

  • 분류 고고·미술 > 분묘
  • 권호수 제40집
  • 저자 김기범
  • 발행일 2004년 8월
  • 게재지 백제연구
  • 발행처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목차

I. 머리말
II. 한성시기 횡혈식 석실분의 시ㆍ공간적 분포 양상
III. 횡혈식 석실분의 계보
1. 횡혈식 석실분의 등장 의미
2. 횡혈식 석실분의 기원
IV. 한성시기 횡혈식 석실분 축조세력의 성격
V. 횡혈식 석실분 수용기의 정치적 배경
VI. 맺음말

요약

백제 횡혈식 석실분이 최초로 등장하는 한성시기에는 석실분의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은 한성시기 백제 횡혈식 석실분이 중앙의 통제에 의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적으며, 지방에서 개별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한성시기의 석실분의 형태 중 ‘분강․지석리’형과 일부 장방형은 추가장이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추가장(追加葬)이 힘든 형태는 전체 횡혈식 석실분 중에서도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모든 횡혈식 석실분은 시신의 매납(埋納)이외의 공간을 갖추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러한 요소가 횡혈식 석실분의 특징으로 보다 유용하게 지적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의 전래로 횡혈식 석실분이 등장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그 기원지는 한군현 지역이 유력하다. 한군현으로부터 횡혈식 석실분의 전래 배경에는 백제 중앙의 대외 교섭 장악으로 지방 세력이 선진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창구가 중국 군현 지역으로 한정되었기 때문이며 새로운 선진 문화와 함께 횡혈식 석실분 축조에 관한 지식을 받아 들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성시기 횡혈식 석실분의 축조집단은 위신재의 부장 양상을 통해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횡혈식 석실분의 축조는 축조시 노동력과 기술의 동원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다른 묘제들의 축조세력에 비해 상위의 계층인 것은 확인할 수 있어 지방의 수장층을 중심으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의 성격은 백제 중앙의 지방지배에 매개자 역할을 한 집단으로 일정한 자율성을 가지고 횡혈식석실분을 선택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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