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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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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산성 장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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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장대지 군대를 지휘하기 위한 건물인 장대(將臺)가 있었던 자리이다. 1980년 발굴 조사를 통해 3개의 주춧돌 자리가 확인되었으며,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의 정방향 누각 건물이 있엇던 것으로 추정된다.
  • 인절미의 고향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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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절미의 고향 공주 인절미는 찹쌀을 시루에 익힌 다음 그것을 절구에 찧어 조그맣고 네모지게 잘라 콩고물에 먹는 떡이다. 그런데, 왜 인절이마 불렀을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임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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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류각 제 제24대 동성와 22년 (500)에 왕궁 동쪽에 지은 건물이다. 높이가 15m에 이르는 고층으로 왕과 신하들의 연회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 공산성 발굴 조사 과정에서 임류각 터를 발견하고, 1993년에 문헌 기록 및 발굴 조사결과를 근거로 2층 누각으로 복원하였다.
  • 공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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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정 공산성 서북쪽 산마루에 있는 누각이다. 이곳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금강교 (등록문화재 재232호)등 공주의 전경을 한누에 전망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금강의 낙조(落照)와 야경(夜警)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 쌍수정 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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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수정 사적비 인조가 이괄의 난(1624)을 피해 공산성에 머물렀던 일을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 비문에는 이괄의 반란, 인조가 난을 피하게 된 사실, 공산성에 머물렀던 6일 동안의 행적, 공산성의 모습 등이 적혀 있다.
  • 공북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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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북루 공산성의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국 통로로 이용되었다. 1603년 (선조36)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 터에 다시 지어 공북로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 명국삼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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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국삼장비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선조31) 공주에 주둔하였던 명나라 세 장수 이공, 임제,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이다. 1599년 금강변에 세웠으나 홍수로 매몰되었고 1713년( 숙종39) 다시 세웠다. 일제강점에는 일본인들이 비석에 쓰여 있던 왜구(倭寇)라는 글자를 지우고 공주읍사무소 뒤뜰에 묻어두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
  • 금서루 입구 비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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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서루 입구 비석군 공주와 관련된 인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들이다. 공주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송덕비와 제민천교영세비 등 47기가 있다.
  • 만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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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하루 조선 영조(1724~1776)대에 건립된 누각이다. 연못과 금강 사이에 자리 잡은 누각은 공산성을 방어하는 군사적 기능과 평소 경치를 관람하는 역할을 하엿다. 홍수로 붕괴되어 땅 속에 묻혔다가 1982년 발굴 조사로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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