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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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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 공산성 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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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공산성 연지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가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방형의 연못이다. 금강에 가까이 위치하여 물을 쉽게 확보할 수 있게 하였고, 연못의 가장자릭 무너지지 않도록 돌로 층을 이루게 단을 쌓았으며, 연못 수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북쪽과 남쪽에 계단 시설을 하였다. <>
  • 공산성 영동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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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영동루 공산성이 4개 성문 가운데 동쪽에 설치된 문이다. 이미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80년에 발굴 조사하여 건물의 하부구조를 확인하였다. 성문의 너비는 2.5m였고, 문옆 양쪽에서 문을 지탱하고 있던 문지석을 원래 모습대로 찾아내었다.
  • 공산성 금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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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4개의 성문 가운데 서쪽에 위치한 문루이다. 성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가, 1895년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등의 문헌 기록과 동문 조사 자료 및 지형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다.
  • 공산성 진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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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진남루 공산성의 남문으로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 토성이었던 공산성을 조선 초기에 석정으로 다시 쌓으면서 세운 문루이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고쳐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여 원래대로 복원한 것이다. 높은 축대 위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을 세워 2층 누각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
  • 공산성 쌍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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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쌍수정 1734(영조 10)에 관찰사 이수항이 인조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자이다. 인조는 이괄의 반란(1624)을 피아여 공주로 피난을 와 6일간 공산성에 머물렀는데, 인조는 이곳애 서있던 두 그루의 나무(雙樹) 밑에서 반란이 진압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 공산성 광복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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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광복루 공산성 동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2층 누락으로, 공산성 안에 주둔한 군대를 지휘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이었다. 원래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에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雄心閣)으로 불렀는데, 1946년 4월에 김구 선생과 이시영 선생이 와서 나라를 다시 찾았음을 기리고자 ""광복(光復)""이란 이름을 붙이게 됨으로써 누각 명칭이 광복루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 공산성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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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연못 백제가 (475)년에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긴 직후 만든것으로 추정되는 왕궁지 연못이다. 1985~1986년에 걸친 왕궁터 발굴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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