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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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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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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터 사방 16m 길이의 석렬시설(石列施設)로 건물터를 만들었다. 잘 다듬어진 면석을 0.8~0.9m 폭으로 세운후, 내부를 진흙으로 단단하게 다졌다. 주변에선 길쭉하거나 둥근 형태의 폐기(廢棄)구덩이가 여럿 발견 되었는데, 6세기 중반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청자파편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 건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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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터 오른쪽의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는 건물터에서는 둥근 형태의 적심이 1.5m 내지 2.8m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앞쪽의 건물터는 한 건물 내에 너비 약 3m, 길이 약 5m 크기의 두 개의 방을 가진 구조이다.
  • 기와 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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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 가마터 기와를 굽던 두 기의 가마와 동서로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다. 모두 소성실(燒成室)의 천장이 무너진 상태로, 아궁이와 연소실 내부에서 숯과 불에 탄 흙, 기왓조각이 발견되었다.
  • 건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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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터 왼쪽 건물터는 위치와 구조로 볼 때, 석축을 넘나들기 위한 출입시설로 추정된다. 동서방향 석축에서 튀어나와 양쪽으로 면을 맞춰 돌을 쌓았는데, 동서 길이가 약6m, 남북이 약 4m 가량 남아 있다.
  • 석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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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축 석축은 왕궁 안에서 동서 방향으로 4개, 남북 방향으로 2개가 발견되었다. 비탈진 땅을 평평하게 다지려고 석축을 쌓았는데, 잘 다듬어진 돌을 먼저 쌑고 막돌과 점토로 뒤채움을 하였다.
  • 건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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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터 건물의 규모와 원형 주춧돌을 사용한 것으로 볼 때 왕궁의 행정 업무를 보던 정청(政廳)으로 추정된다. 한 건물에 방 두 개가 있는 건물 두 채가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서 있다. 건물은 정면 9칸(19.2m), 측면 4칸(11.6m)으로 되어 있는데, 내부에는 한 변의 길이가 6m인 방이 두 개 있다.
  • 대형 건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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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건물터 이 건물터는 왕궁리 유적 건물터 중 가장 크다. 건물은 정면 7칸(31m), 측면 4칸(15m)의 크기로 남문과 같이 왕궁의 남북 중심축에 있다. 규모나 건축 기법, 위치로 볼 때 대규모 집회나 연회 등에 사용한 건물로 추정된다. 이 건물터에는 대형 건물의 기둥을 받치기 위한 독특한 건축 기법이 사용되었다.
  • 왕궁리 유적(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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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리 유적(안내판) 왕궁리는 예로부터 왕궁평, 왕검이, 왕금성으로 불려, 고대 백제의 왕궁이 이었던 자리로 충정되는 곳이다. 이 지역의 유적은 고대 백제의 왕궁이 있던 자리에 사찰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