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에서 廟가 설치되고 국가적인 신앙체계로까지 부상했던 시조신앙으로는 東明信仰과 仇台信仰이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동명묘에 대한 기록이 한성시대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고구려와의 관계를 통하여 살펴 보았다. 그리고, 『周書』 百濟傳에서 구태를 백제의 시조로 인식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仇台信仰과 그 구체적 표상인 仇台廟의 성립배경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백제의 대고구려 인식이 시대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도 살필 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얻은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백제 초기에 보이는 東明廟에 대한 기록을 검토해 본 결과, 전지왕 2년(406)의 기록을 끝으로, 그 이후로는 백제에서 동명묘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백제에서 동명묘에 대한 제사가 한성시대에 국한하여 행해졌다고 볼 수 있으며, 좀 더 범위를 축소한다면 전지왕대인 5세기 초를 그 하한으로 잡을 수 있다.
둘째, 仇台廟에 대한 기록들은 모두 사비시대의 사정을 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어도 仇台에 관한 한 『周書』 백제전의 기록이 가장 원초적이고, 여기서의 구태묘 봉사기록은 사비시대의 상황을 전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백제초기에서 웅진시대까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仇台廟가 세워지지 않았고, 국가의 시조로서 仇台는 신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
셋째, 仇台廟 성립의 한 배경을 백제 반고구려 의식의 성장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성시대 후기부터 격화된 고구려와의 전쟁은 백제내에서 반고구려 의식의 성장을 가져왔다. 이는 백제 초기부터 있었던 고구려 동류인식의 퇴색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시조신앙에도 영향을 미쳐, 고구려와 동류신앙인 동명묘제사는 소멸되어 갔고 다른 시조신앙을 찾았다. 이에 고구려와는 상관없이 직접 부여와 연결되는 구태가 백제왕실의 새로운 시조로서 자리잡게 되었고, 이를 모시는 廟가 설치된 것이다.
넷째, 仇台廟의 설치는 사비천도와 짝하여 이루어졌다. 백제의 사비천도는 웅진 초기의 혼란을 어느정도 수습한 동성왕대부터 계획되었고, 천도가 이루어진 것은 성왕대이다. 이 무렵, 백제왕실의 새로운 시조묘로서 구태묘가 설치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상에서 볼 때, 백제에서 동명묘 제사가 소멸된 것은 갑자기 이루어졌던 일이 아니고, 한성 후기부터 그 의미가 서서히 퇴색해 갔던데 따른 결과이다. 이는 나아가, 사비천도 이후 구태묘가 성립되는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여기에는 고구려와의 관계가 외적요인으로 일정정도 영향을 끼쳤다.
한편, 본고에서는 구태묘의 성립배경을 주로 고구려와의 관계속에서 찾았기 때문에, 백제사회의 내적발전에서 나타나는 시조묘의 변화요인은 다루지 못했다. 그 결과 구태묘의 성립배경을 너무 단순화하여 보았음을 필자 스스로 인정하는 바이다. 이러한 한계성에 대해서는 글을 달리하여 보완하고자 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