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扶餘隆墓誌」 및 그 拓本
3. 「扶餘隆墓誌」주인공 나이 및 그의 父, 祖에 관한 記事
4. 扶餘隆의 사로잡힘과 이와 관련된 문제
5. 扶餘隆과 白江口 周留城의 전투
6. 扶餘隆과 新羅社會
7. 扶餘隆의 晩年
8. 맺음말
요약
본고는 「扶餘隆墓誌」를 중심으로 묘지문의 서술 내용과 사서의 것을 서로 대조해 살핀 것이다. 묘지문 가운데 의의가 있는 것을 분석 검토한 뒤, 이미 소개된 사실이 오기가 있을 경우 사적의 내용에 따라 이를 바로잡았고 부족한 점을 보충할 수도 있었으며 잘못된 것을 입증할 수도 있었다. 이에 따라 묘주의 올바른 일생을 서술하고 당대 한중교류 사실과 관련된 사건들도 정리한 것이다.
부여륭 사적의 최조 기록은 그가 부여의자 및 그 신하들과 당군의 포로가 된 사실이다. 이는 그 서술이 함축적인데다 당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5장에서는 그가 백강구과 주류성 전투에 참가한 사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에 대해서 묘지문의 묘사는 아주 간단하며 당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
6장에서는 부여륭이 망한 백제를 대표하여 전승국인 신라와 불평등맹약을 체겨람으로 백제의 고토를 당과 신라의 직할령으로 공식 승인함을 알 수 있었다.
7장에서는 묘주의 만년에 해당되는 몇 가지 사건을 검토, 정리하여 그가 당에서 받은 관직과 봉작에 관한 문제, 그의 장지와 사망지 등을 밝혔는데 이는 종래까지 미해결된 사실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