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백제의 수도였던 현재의 공주 지역에는 다른 지역에 전해지지 않는 곰나루 전설이 곰나루, 곰굴, 웅신사, 곰 석상 등의 증거물과 함께 구전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곰에 대해서는 구비에 해당하는 강의 만곡부였다거나 신을 뜻하는 에서 온 말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북방 만주지역 소수민족인 에벤키와 오로촌의 종족 기원 신화로서의 곰 신화와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일찍 문헌에 채록된 단군신화와 함께 한국의 곰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곰나루 전설이 공주 지역에 전해올 수 있었던 배경으로 웅진천도 후 왕실과 마한계 토착 귀족 사이에 발생했던 정치적 상황을 연결시켜 보았다. 웅진기는 475년에서 538년까지로 한성 상실의 고난을 딛고 백제 재부흥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였다. 구귀족세력인 해씨와 진씨의 전횡 및 연씨의 등장이라는 정치적 불안정 속에 문주왕과 삼근왕이 피살되었고, 이어 즉위한 동성왕은 구귀족세력인 진씨와 마한계 신귀족세력인 백씨 집단의 조화 속에 왕권의 강화를 꾀하였으나 결국 피살되었다. 여기서 마한계 토착 집단이었던 백씨 집단이 고조선의 곰 신앙 전통을 계승한 곰 신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성기 때부터 수촌리 고분군을 조성한 유력 세력으로 보았다.
곰나루 전설은 바로 이러한 시기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동성왕이 융합 정책 속에 토착 마한 계통의 제사체계를 백제 국가제사 체계로 편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제천지’의례가 마한의 수확제 시기에 맞추어 거행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백씨 집단의 곰 신화도 한때 백제의 신화체계 속에 편입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하지만 마한계 토착세력인 백씨 집단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무령왕은 토착세력을 배제하고 부여계 왕실 중심의 정치를 이끌면서 안정을 되찾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성왕 때에는 부여 계승 의식을 한층 강조하면서 사비로 천도한 후 재도약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곰 신화는 백제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문헌 자료에 기록되지 못했고, 본래의 신화 모습을 잃고 비극적 결말을 가진 곰나루 전설로 변형되어 구비 전승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공주 지역의 방위명 혈사에 존재하고 있는 동굴에 주목하였는데, 이를 곰 신앙을 지닌 마한계 토착세력의 국가제사 편입과 함께 이들 동굴도 국가제사처로 중시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이후 무령왕과 성왕은 마한계를 배제한 부여계 주심의 제사체계를 중국의 영향 아래 재정비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비기인 위덕왕대에도 공주 지역의 혈사는 토착 산신 신앙의 근거지로만 기능하였고, 이후 신라 하고기에 선종의 영향 아래에서 불교 사원으로 재탄생된 것으로 보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