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子 이후 전국칠웅시대가 끝나면서 大陸은 四國分裂時代로 넘어오면서 百濟는 山東省을 중심으로 河南地域을 차지하여 孔․孟思想의 본거지로써의 도학사상을 선양하였다. 廣闊한 大地에 풍요한 자원으로 하여금 寬厚德實한 군자풍의 대도호연 의 기상을 펼쳤다. 百濟人은 너그러운 성격과 풍부한 학풍을 이어왔다. 百濟인은 崇文하여 詩, 書, 禮, 樂이 生活文化의 주종을 이루어 父母에 효도 兄弟友愛하는 孝弟忠信의 대업을 이룩할 수 있었다. 후에 佛敎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南方道敎의 영향도 받았다. 大陸과 半島와 日本섬을 연결하는 교량의 역할도 있어 百濟文化의 꽃이 日本에까지 피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百濟의 崇文思想은 百濟멸망 이후까지 그 유민에 의해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문학 예술면에서도 독특한 경향을 보였으며 忠과 孝가 그 으뜸을 보인다. 성충 흥수같은 이의 忠과 계뱍의 忠이 百濟 滅亡 당시까지도 높은 기개로 선양되었고 의자왕도 초년에는 매우 孝誠스러웠던 효자이었다. 뿐만 아니라 烈女로서도 도미의 妻는 烈女下更二夫의 大道濡脈情神으로 선양되었으니 忠, 孝, 烈의 높은 이상실현의 기상은 百濟정신의 가장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며 문장에도 사택지적의 비문을 비롯하여 그 유적에서 밝게 유례를 살펴볼 수 있으니 그 연원이 堯, 舜, 孔, 孟에서부터 百濟 멸망까지의 濡脈傳統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