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한국·중국 사료에 보이는 백제악
III. 백제악의 전래
IV. 雅樂寮와 백제악
V. 맺음말
요약
백제에서는 일찍부터 농경 의식과 종교 의식에 歌舞가 사용되었다. 아울러 음악은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그 후 백제악은 백제가 南朝와 빈번한 교류를 행했기 때문에, 주로 淸樂과 같은, 姿態를 重視한 조용한 宴餐音樂이 수입되어, 백제 고유의 토착적인 歌舞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 混在되었다. 여기에 仏敎와 道敎的인 음악이 포함되어 다양한 성격의 음악이 새롭게 형성되었다고 추측된다. 그리고 이러한 백제악은 적어도 6세기 초에는 국가조직에 편입되어 제도화 되었다고 생각된다.
한편 欽明朝에 渡日한 「百濟樂人」은 백제의 官人이고, 그들이 가지고 온 백제악은 다양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南朝의 音樂과 불교 음악도 포함되어 있었고, 伎樂도 그 일부였다고 추측된다. 그리고 이 같은 백제악은 당시 왜국의 사정을 고려하면, 왕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백제악이 왕권에 의해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되었는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6세기 초 전래된 백제악은 이후 국가적인 조성책이 성립되어, 율령제의 성립과 함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