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 불교의 도입 - 민간에의 도입
II. 聖徳태자의 불교
III. 『의기』에 비판적인 부분
IV. 聖徳태자의 저작
V. 『법화의소』와 백제 혜총・고구려 혜자
V. 맺음말
요약
일본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일본서기』에 의하면 흠명천황 13년(552)에 백제의 성왕으로부터라고 한다. 다만 일본의 민간에서는 흠명천황 7년(538)이라고 하여 연도를 둘러싼 견해의 차이가 있다.
천황은 최고 신관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 종교의 수용을 둘러싸고 숭불파의 蘇我씨와 배불파의 物部․中臣씨의 대립이 일어나고 결국 양 무제-백제성왕-왜 흠명천황이라는 조정 외교의 장에서 소개된 불교는 일본에서는 소아씨의 씨족 불교로 수용된 것이다.
최초는 씨족 수준에서 수용된 불교지만 그 뒤의 동향을 보자면 흠명 천황과 그 다음 민달천황도 배불파에 가까웠다. 국가적으로 불교를 수용하고자 한 것은 초고천황이었다. 초고천황이 다스리는 동안의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삼경의소』 찬술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삼경의소』의 검토 결과 사상의 내용이나 이체자 연구에서 아스카 시대의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고, 아스카 시대의 것이라고 인정된다면 후세의 문헌에 기술되는 대로 성덕태자의 저작으로 인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의소』를 읽고 있자면 이 책은 개인 저술이면서도 그 배후에 학술 고문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문장이 있다. 학술고문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면 백제의 혜총과 고구려의 혜자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았다.
이처럼 일본 불교는 백제로부터 공식적으로 전해졌을 뿐 아니라, 백제․고구려 승려의 공헌 하에 교학의 기초가 놓여 간 것으로 생각된다. 덧붙이자면 『일본서기』에 나오는 외국 승려를 모아 보면, 백제승 14명, 고구려승 9명, 신라승 5명, 그리고 후기에 속하지만 대당승 10명이다. 이 숫자가 대당승을 제외하고 있는 그대로 아스카 시대의 일본 불교계의 실정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