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예의 특징의 하나로 시간과 공간의 고립성을 말할 수 있다. 과거의 서사자가 글씨를 쓰는 순간 연속되던 시간과 공간이 어느 특정한 시간과 공간(서예유물)으로 고립 분리되었다가 다시 수많은 시공을 격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 새로운 감성읽기를 시도한다면 그 서예유물은 비로소 시공의 고립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은 無文字 時代부터 다양하게 새기고 그리는 유의미한 행위를 해왔다. 때문에 우리는 無文字人들의 巖刻畵를 통해서, 商周時代의 甲骨文과 金文에서, 그리고 秦漢의 碑文이나 畵像塼 등에서 각각 다른 의식과 독특한 문화흔적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 이처럼 서예에는 각시대의 다양한 문화 감성이 때로는 드러나고 때로는 숨겨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다각적인 다시 읽기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백제서예에 대해서 어떠한 읽기를 할 수 있는가? 현재 백제 서예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은 《무령왕지석》 《사택지적비》 《창왕명사리감》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토기나 와편 등의 銘文과 최근에 발굴된 木簡 등이 있다. 다양한 형태의 유물에 비하여 종래의 백제 서예에 대한 해석과 논의는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고 본다.
이에 본고에서는 그동안 한정된 유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제한된 해석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은 서예 유물을 통해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먼저 웅진시기를 중심으로 다양한유물속에 남아있는 서예 흔적을 찾아 다시 읽기를 시도하려한다. 다음에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중국과의 수동적인 영향관계 속에서 보려는 해석에서 벗어나 백제 서예는 분명 내재적인발전이 있었고 이에 따른 서예교류가 있었음을 주목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색을 통해 우리는 웅진시기 백제 서예에서 생명력 있는 미감과 감성을 담고 있는 문화 흔적들을 재음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