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II. 웅진도독 왕문도의 사망에 대한 고찰
III. 백제유민 예식진(예寔進) 묘지명
IV. 맺음말
요약
7세기 중엽 당왕조는 백제와, 백제멸망이후 웅진도독부와 빈번한 왕래가 있었으며, 각계의 인사들이 역사무대에 등장하였다. 당장수 왕문도와 백제유민 예식진 역시 이중 한 인물들이다. 웅진도독 왕문도에 대해서 보면, 그가 한반도의 삼년산성에 도착한 후에 돌연사했다는 것 이외에, 학계에서는 이 사건 발생전후에 관련 된 수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며 현재까지 그 문제 관련한 논고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본고에서는 당조정에서 왕문도를 백제에 파견한 경위와 돌연사한 원인에 대해서 논증하고 더불어 본인의 의견을 제기하고자 한다. 새롭게 발견된 백제유민 예식진묘지명에 대한 문헌자료를 통해 백제 멸망시기 당시 실제 상황을 고증해 볼때, 필자는 예식진은 소정방에 의해 백제 의자왕과 같이 잡혀온 예식과 동일인이라고 생각한다. 예식진은 항복한 후 당에서 중용을 받아 672년 당왕조가 신라에 대한 군사활동에 참여하여 백제로 가는 도중 산동반도에 소재한 황현에서 사망하였다. 백제와 당왕조 사이에 왕래한 인물에 대한 연구는 당제관계에 관련된 많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