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2006년과 2010년에 중국에서 발견된 百濟 遺民 祢氏 家族의 墓誌銘을 분석한 것이다. 이들 묘지명은 문헌기록에는 없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으며, 기존 문헌 기록의 내용을 보완할 수 있다.
祢寔進과 祢素士, 祢仁秀 등 3代와 祢軍 墓誌銘의 발견으로 백제 예씨 가무의 가계를 복원하고 이들이 백제와 당에서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祢氏는 중국 산동지역 출신으로 5세기 초반 腆支王대에 南北朝時代의 혼란을 피해 바다를 건너 이주해 온 가문으로 볼 수 있다. 이들 가문은 당시 국도였던 한성이 아니라 웅진에 정착하였고,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개로왕이 패사하고 웅진으로 천도를 한 뒤에는 중심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웅진에서 미리 지역적 기반을 확보한 祢氏 가문은 대대로 좌평에 오를 만큼 유력한 귀족세력으로 성장을 하였다. 그리고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祢氏 가문은 무왕의 명으로 隋의 고구려 원정에 직접 참여하였고, 그 결과 祢善과 祢眞이 隋로부터 관직을 받기까지 하였다.
祢氏 가문은 660년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공 때 웅진으로 피난 온 의자왕을 사로잡아 당군에 바치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다. 祢植이 祢軍과 공모하여 北方 態津城으로 일시 피난하여 재기를 노리던 의자왕을 사로잡아 蘇定方에게 바침으로서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 祢植과 祢軍은 이러한 공로로 당에 들어가 무장으로 출세를 하게 되었다. 祢植과 祢軍은 처음에는 態津都督府의 관료로 백제 고토에 대한 당의 羈靡支配에 이용되었고, 이후 황제를 近侍하는 무장과 산동지역의 지방관으로 활동하였다. 예식의 후손들 역시 蔭仕러 관직에 진출한 뒤 무장으로 출세를 하였다.
祢植을 비롯한 祢氏의 후손들은 長安城 남쪽 高陽原에 마련된 가족묘지에 묻혔다. 이곳은 오늘날 중국 섬서성 서안시 장안구 곽두진 남쪽에 해당한다. 최근 발견된 이들의 무덤과 묘지명들은 당대 백제 유민들의 행적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연구 자료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