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遼西’의 의미와 345년 이전 晉代의 遼西 정세
1. ‘遼西’의 의미와 지역 범위
2. 345년 이전 晉代의 遼西 정세
Ⅲ. 百濟 遼西 영유의 실체
1. 遼河 以西에 僑置된 樂浪郡
2. 遼西 영유의 실체와 遼東大姓
Ⅳ. 맺음말
요약
百濟의 遼西 영유에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중국 正史 등에는 遼西를 영유한 주체를 百濟라고 한 반면에 『梁職貢圖』에서는 樂浪이라 하였다. 『梁書』『通典』 등에 의하면 百濟가 遼西를 영유한 것은 ‘百濟’라는 국호를 사용하기 이전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는 百濟가 遼西와 관계를 가질 때 ‘百濟’라는 명칭으로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樂浪이라는 명칭으로 관계를 맺은 것을 의미한다. 중국 史書에 의하면 百濟라는 명칭은 345년 이전에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나 그 상한은 불분명하다. 중국 史書에 百濟라는 명칭은 慕容廆에 의해 徙民된 高句麗宇文氏段氏와 함께 언급되는데, 徙民의 사례를 살펴보면 百濟만이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반면에 徙民의 사례에 百濟가 보이지 않는 대신 遼東大姓이 등장하는데, 이 遼東大姓이 百濟의 前身이 아닌가 생각된다. 313년을 전후한 시기에 遼東大姓 출신인 張統이 樂浪郡과 帶方郡 지역에서 高句麗에 대항하다가 流民 천여 家를 이끌고 慕容廆에 귀부하자, 慕容廆는 이들을 安置하기 위해 樂浪郡을 遼河 以西에 僑置하고 張統을 그 太守에 임명하였다. 樂浪郡이 僑置된 지역은 『通典』에 의하면 唐代의 柳城(오늘날의 朝陽市) 부근으로 遼河(大凌河 또는 小凌河) 以西에 위치하였다. 이 지역은 『通典』에 의하면 百濟가 遼西를 영유한 지역으로 比定한 곳이기도 하다. 遼東大姓 출신의 張統이 遼河 以西에 僑置된 樂浪郡의 太守를 지낸 사실을, 百濟의 前身이 된 遼東大姓들은 그들이 遼西를 영유한 것처럼 南朝에 전달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百濟 遼西 영유설의 실체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