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法子 墓誌銘은 2007년 陝西省 西安市의 大唐西市博物館에 소장되었다가, 2012년에 소장처에서 도록을 발간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묘지명에 따르면 陳法子는 615년에 출생하여 690년에 76세로 洛陽縣毓財里 자택에서 사망하여 洛陽 邙山에 매장되었다. 이 묘지명은 탁본의 상태가 매우 좋아서 판독에 이견이 있는 글자가 거의 없고, 특히 기존 사료에서 보이지 않던 백제의 관직이 다수 보여서 주목되었다.
묘지명의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 부분은 묘지명의 제목, 묘주의 출신에 대한 간략한 소개, 중국대륙에서 陳氏의 유래와 활동, 오래 전의 조상들 이래로 중국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겨와서 자리잡는 과정, 증조부∼부친의 관력과 인물 등을 서술하고 있다. 두번째 부분은 묘주가 백제에서 태어나 관직생활을 하던 시기까지의 행적, 묘주가 백제에서 唐으로 귀순하여 이주하는 과정, 唐에서 묘주의 관력, 묘주의 퇴직 등을 서술하고 있다. 세번째 부분은 묘주의 장례, 묘주의 후손과 묘지의 작성 등을 서술하고 있다. 네 번째 부분은 명문인데, 시조부터 아버지까지의 역대 선조, 백제에서의 활약과 唐에의 귀순, 唐에서의 활약과 묘주의 사망, 묘주의 장례 등에 대하여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 중 첫번째 부분에서 舜의 후예인 嬀滿이 周 武王의 맏사위로서 陳公으로 봉해져 춘추시대 제후국인 陳의 시조가 되었고, 대표적인 선조로서 전국시대 종횡가인 陳軫이 활약하였음을 고사 등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중국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겨와서 자리잡을 때에 중간경유지를 거쳤을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두번째 부분에서는 묘주가 백제에서 唐으로 귀순하여 이주하는 과정이 순탄한 것으로 되어 있어, 철저하게 唐의 입장에서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묘지명의 내용상 唐 조정이 작성에 관여한 흔적이 보이지 않고 백제에서의 행적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백제 유민에 의해 작성되었을 가능성도 상정해 볼 수 있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