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 중엽까지 한강 하류역의 일개 小國(『三國志』韓傳기준)에 불과하였던 백제는 북방의 세력 재편에서 비롯된 군사․문화적 파장과 樂浪․帶方郡의 멸망에 힘입어 급성장한 결과 4세기 중엽에는 인구가 약 7~80만명에 달하였던 듯하다. 그리고 당시 백제의 주민으로는 夫餘․高句麗系 南下民과 韓系 先住民, 그리고 樂浪․帶方系 漢人과 인․물적 교류를 통해 유입된 倭人 등의 歸化民을 꼽을 수 있겠다. 이처럼 다양한 집단이 공존하였으므로 백제 사회의 성격은 신라에 비해 개방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신라에서와 같은 엄격한 身分制(骨品制)를 운영하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