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야탑동 積石塚은 梅址峯의 서북쪽 능선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9년 지표조사에서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고, 1990년 8월 1일부터 10월 12일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야탑동 적석총은 모두 9기로 보고되었으나 9호 적석총은 파괴가 심하여 실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8기이다.
야탑동 적석총의 외형은 할석을 적석하여 평면 타원형의 墳丘를 조성하였고, 적석분구의 가장자리를 따라 위석을 배치하였다. 분구의 규모는 1호 적석총은 660×540㎝로 가장 크고, 2호 적석총은 350×300㎝로 가장 작으며, 대체로 장축은 470~570㎝ 내외이고, 단축은 120~157㎝ 내외이다. 墳丘의 장축방향은 3호 적석총은 서북-동남 방향이고, 6호 적석총은 동북-서남 방향이며, 나머지는 모두 남-북 방향이다.
야탑동 적석총의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은 墳丘形 積石部의 중심부에서 조사된 大形 塊石의 배치이다. 이들 대형 괴석은 주로 묘실 벽면이나 묘실 가까운 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석분구형 매장구조에서 매장주체부인 墓室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석곽은 積石 墳丘를 조성한 石材와 같은 크기의 소형 할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墓室은 長方形 石槨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묘실의 축조 방식은 소형 할석을 2~3단 정도 平積하는 방식으로 壁面을 構成하였다. 석곽의 크기는 2호 적석총은 120×50×20㎝로 가장 크고, 6호는 겨우 83×46×37㎝에 해당한다. 따라서 야탑동 적석총의 석곽은 주로 소형에 해당한다. 석곽의 규모에 따른 매장 방법을 보면, 幼兒葬이나 洗骨葬 또는 火葬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특히, 야탑동 적석총은 소형 석곽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二次葬을 고려할 수 있는데, 묘실에서 炭化된 木材片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어서火葬보다는 二次葬이 좀 더 유력해 보인다.
야탑동 적석총의 축조 시기는 유적의 축조구조나 유적 주변에서 출토된 토기편 등을 통하여 편년할 수 있다. 야탑동 적석총은 墳丘 주변을 따라 圍石한 基壇式 적석총에 속하고, 積石에 사용된 石材로 割石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墳丘를 구성한 割石들 사이에서 三國時代의 灰靑色 硬質土器片과 灰黑色 硬質 土器片들이 收拾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遺構의 構造나 출토유물의 성격을 고려하면, 성남 야탑동 적석총은 서울 석촌동이나 양평 신원리의 적석총과 구조적 성격이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서울 석촌동 고분은 3세기 후반~5世紀 후반 경으로 편년되고 있고, 양평 신원리 적석총은 3世紀 말에서 4世紀 初로 편년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야탑동 적석총도 서울 석촌동보다는 빠르고 양평 신원리 적석총과는 거의 같은 시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