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일제강점기 공주 송산리고분군 모습과 발굴 경과
Ⅲ. 1~8호분, 29호분 발굴 결과
Ⅳ. 일제강점기 기록에 보이는 송산리고분군의 모습
Ⅴ. 유리건판과 일제강점기 자료에 보이는 송산리고분군
Ⅵ. 송산리고분군 출토 유물
Ⅶ. 맺음말
요약
송산리고분군은 공주시 금성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발굴된 고분 7기를 포함하여 모두 20여기 이상의 백제고분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현재는 7기가 복원되어 있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됨으로써 이 지역이 웅진시대 백제의 왕릉지구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고분은 표고 130m의 송산을 북쪽의 주산으로 한 남쪽 경사면에 분포되어 있는데, 구릉 윗부분의 1~4호분이 한 그룹을, 그 남쪽사면에 무령왕릉과 5․6호분이 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그 구조는 크게 한성도읍기의 전통을 이어받은 穹窿狀天井을 가진 횡혈식석실분과 새로이 중국 남조로부터 수용한 전축분으로 대별된다.
이 중에 전축분은 무령왕릉과 6호분인데, 처음에 왕묘는 횡혈식석실분이었으나 남조의 영향으로 전축분으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서울의 석촌동 적석총과 유사한 方形 유구가 2기 조사되었으나 구체적인 매장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祭壇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고분군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때 도굴과 발굴조사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졌는데, 발굴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았거나 疏略하여 그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리건판 38,000여매 중에서 송산리고분군의 1920~1930년대 모습을 담은 80여매와 『昭和二年度古蹟調査報告』, 2002년 간행된 有光敎一 등의 『朝鮮古蹟硏究會遺稿』Ⅱ권, 輕部慈恩의 『考古學雜誌』에 수록된 「公州に於ける百濟古墳」논문 등을 참고하면 일제강점기 송산리고분군의 대략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웅진 백제시대 최초의 벽돌무덤으로 알려진 송산리 6호분과 지금은 사라진 송산리 29호분의 자료들이 확인된다.
약 80여매의 유리건판 중 상태가 불량한 것과 능산리고분군 관련 자료를 잘못 판단한 것을 제외하면 총 72매의 송산리고분군 관련 유리건판이 확인되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