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州地方에서 調{査된 古墳에 關한 記錄은 數量面에서는 많은 便이었으나 그 內容은 매우 不正確하였다.古墳들의 位置는 平地의 築造狀態를 지나서 丘陵이나 頂上部를 選定하고 있으며 公山城주변을 따른 소위 羅城의 산줄기를 따라 古墳群이 分布되어 있었다. 古墳의 종류를 볼 때 甕棺墓 중에서 無文土器系統은 그 位置로 보아 百濟時代와는 좀 떨어진 外廓地帶에 있었고 鳳亭里나 熊津洞의 石槨甕棺墓는 이들 두 墓制가 結合하여 石槨墓를 쓰지만 在來의 甕棺을 使用하는 階層의 保守的인 面을 보여주고 있다.
熊津洞9號墳처럼 穹窿狀石室墳의 陪塚으로 利用되고 있음도 他地域의 甕棺墓와 比見되겠다. 穹窿狀石室墳은 역시 大規模이고 그 分布地域도 宋山里, 甫通里等限定되어 있어 支配階層의 家族的, 나아가 種族的特性을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가장 넓은 分布와 多數의 墓制는 石槨墓라고 생각되며 거의 全體古墳數의 8할에 達한다는 點에서 主流를 이루고 있다고 하겠다. 이 外에 맞배, 맞조임, 괴임式等은 基本{的인 墓制에서 變化된 墓制로 一部階層에 依한 發展的인 것으로 보아야 되겠다.
塼築墳은 原來漢四郡時代부터 있어온 墓制이지만 百濟에서는 公州地方에서만 發見된 墓制로 中國의 南朝에서 영향을 받아서 築造되고 天井의 架構나 壁畵의 응용은 역시 百濟人의 생각이 첨가된 獨特한 手法이라고 하겠다.
扶餘遷都以後는 支配階層은 板石造를 利用한 墓制를 널리 쓰고 있다고 보인다. 火葬墓도 있으나 公州에서는 發見例가 없어 除外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