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論
Ⅱ. 甕棺墓의 出土狀況
Ⅲ. 옹관묘의 구조
Ⅳ. 옹관의 형태
Ⅴ. 性格 및 編年
Ⅵ. 結論
요약
한강, 금강, 동진강, 영산강을 중심으로 한 백제 고지에서 조사된 옹관묘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1) 백제지역의 옹관묘는 선사시대부터 백제 말기까지 전지역에 걸쳐 다양하게 축조되었다. 한강유역과 금강유역에서는 일시적으로 쓰여지나 영산강유역에서는 계속 발전하여 사용되어졌음을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2) 묘제상으로 보아 옹관 자체만 쓰인 경우는 이른 시기의 것이고, 타 묘제에 陪葬된 경우는 역사시대에 들어온 시기의 것들이다. 3) 옹관이 초기에는 주로 어린 아이들에게 사용되다가 시기가 내려오면서 성인의 伸展葬과 2차장에 사용되어진다. 4) 부장유물의 내용으로 보아 대체적으로 일반 서민층에 쓰여졌으나, 부분적으로 지배층에도 쓰여졌다. 5) 두침의 방향은 기존 묘제의 방향과 일치하는데 삼국 이전에는 동침이, 삼국시기에는 남침, 북침이 주류를 이룬다. 6) 사체는 머리쪽을 약간 높게 위치하도록 매장하여 두고족저의 위치가 되도록 하였다. 7) 한강유역과 영산강유역에서는 하나의 봉분내에 여러 기의 관이 매장된 가종공동묘적인 성격을 띤다. 8) 금강유역에서는 肉脫후 취골하여 옹관에 넣는 2차장이 사용되었다. 9) 한강유역과 영산강유역에서는 평지나 구릉의 정상부 편평한 곳에 위치하며 금강․동진강유역에서는 구릉의 경사면에 산의 경사를 따라 위치하였다. 10) 한강․영산강유역은 점토를 판축하여 봉토를 만들었고, 옹관은 봉토 중에 안치되었다. 11) 한강 유역은 토광묘에 陪葬되었고, 금강유역은 석실묘에 陪葬되었거나 인접한 곳에 석실분이 있으며 수혈식석곽내에 안치된 것도 있다. 12) 영산강유역에서는 옹관묘군 속에 토광묘가 배장되어 있다. 13) 영산강유역의 관은 소형의 일상용기를, 금강유역은 호형의 일상용기를, 동진강 유역은 대형의 일상용기를 대용하면서 전용관이 제작되며, 영산강유역에서는 원통형 대형옹관이 특별 제작되어 사용되었다. 14) 금강유역의 옹관 중에는 관의 저부에 2차 천공이 있는 것도 있다. 15) 토기의 문양은 격자문, 승석문, 승문과 격문의 혼합문, 거치문, 융대문 등이 사용되었고 거치문은 동진강과 영산강유역의 옹관 견부에서만 보여진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