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8월 中旬頃 扶餘郡 九龍面 論峙里 뒷山에서 지표 아래 80cm 部分에서 炭化된 米, 麥, 小豆, 粟, 등 炭化米를 비롯하여 百濟時代 土器片들이 많이 出山되었다. 炭化米가 出山되는 이 出城을 便宜上 「論峙山城(1)號」라 하고, 이 地點에서 北쪽으로 約 1,200m 떨어진 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山城이 있어서 「論峙山城(2)號」라고 稱號를 부쳐서 孝察하여 보고자 한다. 새로 炭化米등이 發見된 이 山城의 重要性에 비추어서 前扶餘傳物館長 洪恩俊先生이 기초조사만 하여둔 채 버려져 있었던 것을 이번에 再調査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調査에는 洪思俊先生과 肋敎兪元載君 大學院 史學科 留學生 龜由修一君의 合同調査로 이루어 졌음을 밝혀 둔다.
논치산성은 역사지리적 고찰해볼 때, 서해안 서천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기 위한 산성으로 현재 논치산성2호가 위치한 지형은 산 중턱에 있어서 산성의 유형분류가 애매하다. 이는 익산 한산성과 함께 신라형에 속하는 산성으로 백제산성유형에 속하는 산성으로 보여져 재고찰 되어야할 산성이다.
출토된 탄화곡은 부소산성에서 출토되는 종류와 비슷하며 서천 건지산성의 탄화미보다는 다양하게 출토되는 것이 특징이다.
논치산성 탄화곡은 부소산성이나 건지산성과 같이 성내에서 출토되는 것이 아니고 별도의 산성에서 발견되는 것이 특이하다.
논치산성의 축조연대는 백제본기의 산성축조기사를 중심으로 하여 백제 말기로 추정되며 이는 산성축조년대의 편년을 만들기 위한 시도일 뿐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앞으로 논치산성의 조사결과, 산성의 유형문제, 탄화곡의 과학적 조사, 출토된 토기편 등을 통한 편년문제와 산성축조연대에 대한 문제는 계속 과제로 남아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