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래 상고시대 역사는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이어져 왔으나 성호 이익에 와서 기자조선을 단군조선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당연시 하며 준왕의 남하에 큰 비중을 두었던 것이다. 따라서 준왕이 위만한테 멸망 당하였지만 역사가 위만조선으로 연결되는 것을 거부하고 마한으로 역사가 이어진고 주장하였다. 이는 준왕의 남래 지역이 한지, 구체적으로 익산 일원이기에 삼한의 정통이 준왕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삼한정통론은 자연 위만조선의 역사와 문화가 소외되기 쉬우며 실제 지나치게 준왕의 남하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어 이 시기 고고학적 유물이나 그 역사성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준왕의 남하가 남쪽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이것이 고고학의 실제 성과와는 거리가 있으므로 삼한정통론과 남쪽의 청동기문화의 내원을 일치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남쪽에서도 오래된 청동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최근 석관묘에서 주요 청동일괄 유물들이 반출되고 있어 새로운 해석이 요망된다.
삼한정통론을 무리하게 해석할 경우 석관묘 등의 연대가 준왕의 남래시기와 같아야하는 문제저이 노출되므로 고고학처지에서 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