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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환경

백제 5방성의 위치에 대한 시고(百濟 5方城의 位置에 대한 試考)

  • 분류 지리·환경 >
  • 권호수 제3집
  • 저자 서정석
  • 발행일 2000년 8월
  • 게재지 호서고고학
  • 발행처 호서고고학회

목차

Ⅰ. 머리말
Ⅱ. 史料에 대한 檢討
Ⅲ. 5方城의 位置
Ⅳ. 5傍題 編制의 意味 - 맺음말을 대신하여

요약

方城에 대한 기록과 부흥운동에 대한 기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았을 때 부흥운동시 핵심적인 據城으로 기능하였던 任存城은 다름 아닌 백제의 西方城이고, 周留城은 中方城으로 생각된다. 수도 泗沘에서 서로 비슷한 거리에 있었던 西方城과 中方城이 부흥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東方城은 論山의 梅花山城, 西方城은 禮山의 任存城, 中方城은 全北 井邑, 南方城은 南原으로 비정해 보았다. 中方城과 南方城은 방어시설로써 方城은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앞으로 井邑山城과 南原地域에 남아 있는 성곽을 대상으로 『翰苑』에서 설명하고 있는 方城을 찾아보면 실제로 方城의 모델로 제시한 요거에 어울리는 성곽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5方城의 위치를 이렇게 비정하고 볼 때 백제는 북쪽에다 北方城(公州)과 西方城(禮山)을 배치했고, 동쪽에다는 東方城(論山 思津)과 南方城(全北 南原)을 배치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北方城과 西方城은 對高句麗 防禦를 위한 배치이고, 東方城과 南方城은 對新羅 防禦를 위한 배치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종래에 백제 5方城의 성격이 軍管區的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와도 부합되는 것이다. 아울러, 굳이 이러한 배치관계를 통하지 않고도 부흥운동의 전개 과정을 통해 백제 5方城의 성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泗沘時代에 이러한 지방통치체제가 필요하였던 것은 국력의 신장을 바탕으로 전국을 일원적인 지배체제하에 놓기 위한 당연한 조치이기도 하겠지만 일정 부분은 泗沘都城의 방비체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지방통치체제와 중앙통치조직이 서로 相補的인 존재이듯이 지방에 배치되어 지방통치조직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산성들은 都城制와 相補的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熊津時代에 衛星防備體制로 만족해야 했던 백제의 都城 防備體制는 泗沘 遷都와 더불어 羅城을 갖추고 전국을 단위로 하는 방위체제로 전환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5方城에 대해 “百濟五府 蓋所以衛其京邑 若今廣州華城之制 皆在扶餘之近畿 今全羅南道羅州南原之等 不在五府之界內也”라고 주장한 丁若鏞의 견해는 그 위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5方城의 성격을 적절히 설명한 탁견이었다고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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