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I. 南原 帶方州說
II. 劉仁軌의 帶方州刺史 任命
III. 唐軍의 泗沘ㆍ熊津城 固守
IV. 5都督府 및 1都督府 7州의 設置
맺음말
요약
본고는 백제고지에 설치된 대방주와 대방주자사 유인궤에 관한 기록을 중심으로 남원에 대방군이 결부되게 된 배경과 당군의 활동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고려사 지리지 남원부조의 대방군 설치기사는 삼국유사 기록에서 비롯된 것으로 찬자 일연의 죽군성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서 동국여지승람 남원부 고적조에는 대방주자사 유인궤와 관련된 유적지가 기록되기에 이르렀다.
백제고지의 당군의 활동지역은 사비성 및 웅진성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백제부흥군의 활동으로 여타지역에는 세력이 미치지 못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기간중에 설치된 것으로 기록된 5도독부는 일시적인 설치계획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된다.
취리산회맹 이후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1도독부 7주는 신라 문무왕 11년의 소부리주 설치와 동시에 폐지되었다. 그 7주 중에 대방주가 설치되고 있으며 이 대방주는 소속현의 지명 고찰로 볼 때, 영산강을 포함한 한반도 서남우에 비정될 수 있다.
661년 2월부터 665년 8월까지 백제고지에 머물렀던 유인궤는 1도독부 7주가 설치되기 이전에 대방주자사로 있었다. 이것은 과거의 대방군의 명칭을 차용한 관직명에 불과했을 뿐 백제고지의 대방주하고는 전혀 관계 없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