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기존 연구 성과의 검토
Ⅲ. 충남 북부와 천안지역의 국경선
Ⅳ. 청주와 대전지역의 국경선
Ⅴ. 회인과 옥천 영동지역의 국경선
Ⅵ. 백제의 영남지역 진출과 국경선
Ⅶ. 맺음말
요약
660년 백제 멸망 당시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에 대하여 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 『三國史記』 지리지의 실제 양국의 국경선은 차이가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와 열전의 기록을 지리지의 양국의 군현과 비교해 본 결과 서로 부합되지 않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지리지에 오늘날의 청주, 문의지역은 백제영토로 기록되었으나 신라의 영토였다. 또한 소백산맥 동쪽이 모두 신라영토로 기록되었으나 상당부분 백제영토였다. 소백산맥을 넘어 영남지역으로 진출한 백제가 원래 대가야 세력권이었던 낙동강 서쪽을 상당부분 차지했던 것이다.
백제 멸망 당시 양국의 국경선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백제의 북부지역을 보면 안성천 남쪽 직산 부근에서 경계를 이루었다. 백제는 아산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안성천과 곡교천 하구에서 아산 영인산, 음봉 용와산, 천안 성거산 등 동서방향으로 이어지는 차령산맥의 산줄기를 경계로 삼아 신라와 맞섰다. 성거산 부근에서 진천과 천안 사이를 가르는 산줄기를 자연적인 경계로 삼아 남쪽으로 국경선이 이어졌다. 청주 부근에서는 미호천을 경계로 하여 목천, 전의, 연기는 백제영토였고, 진천, 청주는 신라영토였다. 문의 부근에서는 회덕과 문의 사이를 흐르는 금강 본류가 경계였다. 문의 남쪽 회인은 청주, 보은과 접경을 이루는 백제의 영역이었고, 옥천과 대전의 자연적인 경계를 이루는 계족산과 식장산의 험한 산줄기는 그대로 양국의 국경이 되었다. 옥천 남쪽으로는 금산 서대산과 영동 천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국경이 되었다. 영동 양산에서 국경을 나눈 양국은 소백산맥 줄기를 타고 남하하여 무주 무풍의 羅濟通門 부근으로 이어진다. 무주에서는 덕유산 줄기를 타고 소백산맥을 넘어 거창, 합천, 의령으로 이어진다. 의령에서 남쪽으로는 남강 물줄기를 따라 진주와 사천을 잇는 선을 국경으로 했을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