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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동성왕대 지배세력의 동향과 왕권의 안정(百濟 東城王代 支配勢力의 動向과 王權의 安定)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3집
  • 저자 남형종
  • 발행일 1993년 12월
  • 게재지 북악사론
  • 발행처 북악사학회

목차

1. 머리말
2. 東城王의 卽位와 그 背景
3. 東城王代 支配勢力의 動向
4. 東城王의 王權安定施策
5. 東城王代 王權安定施策의 한계
6. 맺음말

요약

동성왕의 즉위는 당시 정국을 주도하던 진씨세력이 동성이 왜에 오랫동안 체류하고 장자인 무령보다 국내에서의 정치적 기반이 없다는 점에 동성을 즉위시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정략적 차원에서 비롯되었다. 또 고구려 남하가 계속되며 일본열도에 구축된 곤지 세력기반을 바탕으로 왜의 두터운 후원을 받던 동성의 즉위가 위기 극복에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동성왕은 즉위 후 자신의 지배세력을 확립해가는 한편 새로운 인물을 중앙정계에 등용하여 남래귀족의 세력이 약화되어 갔다. 당시 신흥토착세력들의 대두는 왕권강화와 정치권의 남하로 인해 지방세력이 정치에 참여하고자하는 현실적 욕구가 서로 부합된 결과였다.
사비지방의 사씨 세력은 동성왕대 적극적인 대외정책에 편승하여 대외관계 업무에 종사하였고 사비천도계획까지 참여하는 등 실세귀족으로 부각하였다. 연씨 세력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성장하였고 백씨 세력은 웅진에서의 오랜 세력기반을 바탕으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동성왕은 왕권안정을 위하여 사비천도계획과 대토목공사를 펼쳤다. 또한 중국과의 빈번한 대외교섭으로 그동안 국제적 독립에서 벗어나 백제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동시에 지배기반의 확대를 통해 왕권의 신장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특히 동성왕대 2번에 걸쳐 행한 관위수여요청은 개로왕대 왕족중심의 지배체제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즉, 구귀족에 대신하여 다양한 신진귀족이 새 지배체제에 참여함에 따라 신구세력의 균형위에 왕권의 안정을 도모해 나간 것이다. 지방통치체제와 왕후호의 사여는 대고구려전에 대비하여 군사적 동원체제를 일원화할 필요성과 지배질서 내의 관위체계를 보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련된 지방통치체제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지방세력이 성장하자 이들을 지배질서 내에 편입시켜 전통기족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으로 부각시키는 그 권위를 부여해줄 필요가 있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와도 짝한다.
동성왕의 왕권안정책은 제도적 개혁을 수반하지 못한 점, 자신의 기반을 확고히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왕권안정을 도모하여 자신의 피살을 초래하고 하는 한계성을 갖는다. 또 국난극복을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왕권의 안정을 꾀한 점, 무리한 역사로 인해 국고의 탕진과 민심 이반을 초래한 점이 그 한계로 지적된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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