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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터
위치와 구조를 보아 석축을 넘나들기 위한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건물터다. 동서방향 석축에서 튀어나와 양쪽으로 면을 맞춰 돌을 쌓았는데, 동서 길이가 양 8m, 남북이 약 7m, 높이 0.6m 정도가 남아있다. 석축의 동쪽에도 비슷한 건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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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터
궁궐조성을 위한 기초시설로 보이는 동서방향 석축의 중간에 들어서 있다. 땅을 판 후 잘 다듬은 석재를 1~2단 쌓아 터를 만들었다. 한 변의 길이가 12m인 정사각형 건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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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방향 석축
석축은 경사면에 돌을 쌓아 대지(臺地)를 평탄하게 만들기 위한 시설이다. 현재는 길이 약 30m, 높이0.55m(2단) 정도가 남아 있다. 궁궐 관련 건물에서 사용된 석부재(石部材)가 포함되어 있어 금당을 비롯한 사찰의 대지를 조성하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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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터
왕궁리 유적지의 건물터는 대개 동서 방향의 석축돌 앞에 있다. 건물터는 사찰 이전의 왕궁 건물터와 사찰 건물터에서 45곳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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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오층석탑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서 만든 백제계 석탑이다. 높이가 9m인 이 석탑은 단층 기단, 얇고 넓은 옥개석, 3단 옥개 받침 등이 특징적이다. 1965~1966년에 해체?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다.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에서는 금강경판 19장, 금동제 사리함, 사리병 같은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가, 석탑 밑에서는 가로 16.8m, 세로 12.7m인 건물 기초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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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로
동서방향의 석축과 나란하게 위치하고 있다. 남아 있는 배수로는 0.7~0.8m의 폭에, 길이가 약 28m정도이다. 배수로 가장자리는 잘 다듬은 석재를 1단 높이로 잇대어 연결해 만들었다. 배수로 남쪽에 건물터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궁궐 건물 주변의 물 빠짐을 위한 배수시설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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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터
강당터 서쪽에 남북으로 나란히 자리한 두 개의 건물터다. 앞쪽의 큰 건물터에는 강 자갈돌을 둥글게 쌓은 적심(積心)이 동서로 1칸, 남북으로 7칸 남아 있고, 뒤쪽의 건물터는 적심이 불규칙하 흩어져 있다. 앞쪽 건물터에서 대형항아리를 땅속에 묻었던 시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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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터
금당터 뒤에 있는 강당터는 승려들이 설법과 강연을 하던 건물터이다. 강당은 정면 5칸 (17.9m), 측면 4칸 (12.6m)으로 된 통간 형식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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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적기단 건물지
이 건물터는 와적기단이 사용된 왕궁부속건물지다. 와적기단은 기단 외부에 기와를 쌓아 장식하는 기법으로, 사비 시대에 부여와 익산지역에서 유행하다가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